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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심리

'하트시그널'로 본 연애의 심리학

아직 어색한 남녀의 첫 데이트. 데이트 도중 여자 출연자가 남자 출연자의 팔꿈치를 살짝 잡아당겼다. 이 장면을 화면으로 지켜보던 전문가는 “팔꿈치에 신경이 적어 접촉에 둔감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유대감을 형성하기 좋다”는 일명 ‘팔꿈치 효과’를 설명한다.

 

최근 종영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2’. 하트시그널은 일반인 남녀들이 4주간 함께 생활하면서 무한한 ‘썸’을 탈 기회를 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별미는 입주자(출연자들을 부르는 말)들의 영상을 지켜보는 예측자들의 명언이다. 이들은 입주자 간의 ‘하트시그널’, 즉 호감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오늘도 TV로 연애를 공부할 독자들을 위해, 방송에 등장한 하트시그널을 정리했다.

 

하트시그널2 제공
하트시그널2 제공

 

♥ 하트시그널1. 상대방 행동 따라하는 ‘미러링 효과’


나란히 앉은 남녀 입주자가 이마에 손을 댄다. 거울처럼 똑같이 닮은 행동을 자신들도 모르게 하고 있다. 패널로 출연하는 정신과전문의 양재웅 원장은 이를 ‘미러링 효과(mirroring effect)’라고 설명한다.


미러링 효과는 쉽게 말해 호감 가는 상대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말한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거나, 물을 마시고, 다리를 꼬는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는 상태다. 상대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함께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작동해야 가능한 일이다.


거울뉴런은 뇌의 세 부위에 위치한다. 기억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 공간을 인식하고 운동을 기획하는 두정엽, 소리를 듣고 언어를 이해하는 측두엽에 있다. 이들 세 부위에서 뉴런끼리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복잡해 보이는 이 과정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벌어진다.


미러링 효과는 부모의 표정을 따라하는 등 유아는 물론, 유인원에게도 적용되는 원초적인 본능이다. 흥미로운 점은 친밀하다고 느낄수록 거울뉴런이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미러링 효과’는 유아는 물론, 유인원에게도 적용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상대방과 친밀하다고 느낄수록 이 효과는 더 잘 일어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미러링 효과’는 유아는 물론, 유인원에게도 적용되는 원초적 본능이다. 상대방과 친밀하다고 느낄수록 이 효과는 더 잘 일어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하품이 전염되는 것 역시 미러링 효과의 한 사례인데, 이탈리아 피사대 연구팀은 친밀한 사이일수록 하품 전염이 더 잘 일어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낯선 사람보다는 친구일 때, 친구보다는 더 친밀한 가족일 때 하품이 더 잘 전염된다. 남녀 사이에서도 감정적으로 친밀할수록 미러링 효과가 더 잘 발동되는 셈이다. doi:10.1371/journal.pone.0028472

 

호감의 크기가 비슷하더라도 특정 상황에서 거울뉴런이 더 잘 작동하기도 한다. 만약 식탁이 깨끗하거나 지저분한 두 가지 상황에서 상대방이 물을 마시려고 컵을 집어 든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 식탁이 깨끗할 때 물을 따라 마시는 거울뉴런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저분한 식탁에서 컵을 들 경우에는 컵을 치우는 변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파르마대 연구팀은 이처럼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거울뉴런이 더 잘 작동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doi:10.1038/ncpneuro0990

 

 

♥ 하트시그널2. 새로운 입주자의 등장, ‘메기 효과’

 

‘하트시그널1’과 ‘하트시그널2’ 모두 뒤늦게 등장하는 입주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명 ‘메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면, 기존 인물들이 더 치열하고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메기 효과’에서 따온 별명이다.

 

메기 효과는 노르웨이 어부들이 미꾸라지를 살려두기 위해 어장에 메기를 푸는 것에서 착안한 경영학 용어다. 미꾸라지는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결국 미꾸라지 맛이 더 좋아져 비싸게 팔린다. 실제로 방송에서도 메기 역할을 하는 출연자의 등장 이후, 기존 입주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치열하게 ‘사랑 경쟁’을 펼쳤다.

 

미꾸라지 어장에 메기를 푼다면, 메기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미꾸라지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이처럼 경쟁자의 등장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유발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미꾸라지 어장에 메기를 푼다면, 메기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미꾸라지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이처럼 경쟁자의 등장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유발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사랑에 있어서 경쟁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작용한다. 미국 미네소타대 연구팀에 따르면 사랑 경쟁은 한 사람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실패로 이어지는 만큼 두 사람이 양립할 수 없는 경쟁이기 때문에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띤다. doi:10.1016/j.joep.2017.07.009

 

여성의 경우 경쟁자가 나타나면 기존에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거나, 자신이 가진 매력을 더 높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여성의 경쟁력은 외모로 여겨진다. 그 결과 사랑 경쟁을 벌일 경우 여성은 다이어트를 하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경쟁 상황에서 여성들의 거짓말 빈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가령, 이성과 데이트를 한 다음날 동성 경쟁자에게 그 사실을 숨긴다든지, 자신이 얻은 이성에 대한 정보를 동성 경쟁자에게는 바꿔서 전달할 수도 있다. 과도한 경쟁일수록 경쟁자를 폄하하는 경향도 높다. 캐나다 오타와대 연구팀은 이를 성격의 결함이 아닌, 고도로 진화된 사회적 행동의 결과로 해석한다. doi:10.1007/s40806-017-0121-9

 

남성들의 사랑 경쟁은 양상이 다르다. 소위 ‘팀전’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경쟁 상대의 동태를 눈여겨 관찰한 뒤 연합을 체결하고, 그 연합에서 벗어난 경쟁자와만 대결한다. 방송에서도 같은 방을 쓰는 남성 입주자들끼리 서로의 연애를 응원하고, 같은 상대를 두고 경쟁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암묵적인 연합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 하트시그널3. 몸의 시그널 ‘배꼽의 법칙’

 

두 여성 입주자 사이에 앉은 남성 입주자의 몸이 한쪽 방향으로 향한다. 양 원장은 이에 대해 ‘배꼽의 법칙’이라며 배꼽이 향하는 방향이 호감의 방향이라고 해석했다.


배꼽은 ‘몸통의 뇌’라고 불릴 만큼 많은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배꼽의 법칙은 1930년대에 처음 등장했을 만큼 꽤 오랜 세월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대화 중 배꼽이 향하는 방향이 한 사람의 관심의 정도와 행방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 근거라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는 배꼽의 접근은 관심을, 회피는 무관심을, 팽창(상대 쪽으로 가까이 내밈)은 확신을, 수축(상대로부터 멀어짐)은 흥미 감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령, 대화 중에 배꼽이 문이나 출구 쪽으로 향한다면 대화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숨은 감정의 표출이다. 시선과 배꼽이 각각 다른 사람에게 향해있다면, 시선보다는 배꼽이 향한 쪽의 사람에게 관심이 있을 확률이 높다.

 

몸짓에선 다양한 하트시그널이 보인다. 배꼽이나 다리를 꼰 방향을 관찰하면 상대방의 호감을 예측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 쪽으로 향해있기 때문이다. - 하트시그널2 제공
몸짓에선 다양한 하트시그널이 보인다. 배꼽이나 다리를 꼰 방향을 관찰하면 상대방의 호감을 예측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 쪽으로 향해있기 때문이다. - 하트시그널2 제공

배꼽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다리를 꼬는 방향을 살펴보면 된다. 다리를 직접 꼬아보면, 다리가 꼬아진 방향으로 배꼽이 향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심리적으로 더 친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거나, 맺고 싶은 사람의 방향으로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꼬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몸은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스킨십을 통해 일종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촉각은 인간이 가진 오감 중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이다. 수정된 지 3주 이내에 피부세포와 뇌세포를 연결하는 원시 신경계가 발달하기 시작한다. 강력한 의사소통의 형태인 동시에, 유대감 형성에 좋은 방법이 스킨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스킨십은 때로 불쾌감을 유발한다. 하트시그널 방송 중 출연자들이 옷깃이나 팔꿈치 등을 잡는 방식처럼, 시작하는 관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스킨십의 심리적 상한선이 존재한다. 미국 사우스플로리다대 연구팀에 따르면 대화를 하거나, 관심을 끌기 위한 스킨십으로는 팔, 손, 등, 어깨에 가벼운 접촉을 하는 것이 불쾌감 없이 친밀감을 유발할 수 있는 스킨십 비법이다. doi:10.1080/0265053032000071457

 

 

♥ 하트시그널4. 방어 메커니즘 발동, ‘반복 강박’

 

‘왜 나는 늘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가’에 대한 고민은 인류의 오랜 숙제였다. 1900년대 초반부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과거의 연애가 상처만 남겼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를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으로 설명한다.

 

반복 강박은 익숙한 상황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성향을 의미한다. 연애는 인간이 맺는 대인 관계 중 가장 강렬한데, 관계가 강렬할수록 반복 강박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상처가 된 과거는 현재에도 상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익숙함을 ‘안전지대’로 설정하는 심리적 상태 때문에 이런 실수가 발생한다. ‘흑역사’를 다시 반복하는 것이 심리학적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이다.

 

실수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왔던 연애 상대보다 더 나은 상대를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채는 연애에 지쳐 헤어지고도 이를 반복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울기만 한 연애를 하고도 또 이를 반복한다. 반복 강박에 사로잡히면 안정적인 연애, 사랑받는 연애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행복한 상태가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는 ‘반복 강박’으로 설명한다. 불만족스러웠던 과거라도, 익숙한 상황을 안전지대로 설정하는 심리적 상태 때문에 이 현상이 발생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는 ‘반복 강박’으로 설명한다. 불만족스러웠던 과거라도, 익숙한 상황을 안전지대로 설정하는 심리적 상태 때문에 이 현상이 발생한다. - 하트시그널2 제공

여러 심리학 논문의 공통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반복 강박이 치료가 필요할 만큼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이성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자존감을 높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하트시그널을 보낼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하트시그널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 인터뷰 “드라마 아닌 리얼 사랑 이야기”

_이진민 채널A PD

 

“사랑의 시작에는 늘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할까?’ 라는 고민이 동반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할 수 없는 괴로움이 계속되죠. ‘하트시그널’ 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하트시그널’ 연출을 맡은 이진민 채널A PD는 하트시그널을 결국 ‘말하지 않고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신호’ 라고 설명한다. ‘하트시그널2’ 마지막화 방영 다음 날, 이 PD에게 방송을 보며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올해 3월 열린 ‘하트시그널2 제작발표회에서 이진민 채널A PD는 “시청자들이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의 썸을 관찰하며 간접적으로 사랑을 경험하갈 바란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제공
올해 3월 열린 ‘하트시그널2' 제작발표회에서 이진민 채널A PD는 “시청자들이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의 썸을 관찰하며 간접적으로 사랑을 경험하갈 바란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제공

Q. 하트시그널을 보며 덩달아 설렌다는 시청자들이 많은데?


하트시그널에는 크게 ‘입주자’ 와 ‘예측자’가 출연한다. 입주자는 마음껏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예측자는 그들의 눈빛과 표정을 읽어 호감의 방향을 파악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어색한 말, 흔들리는 시선, 온유한 미소와 같은 ‘하트시그널’을 놓치지 않고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촬영 현장에서조차 이런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다 포착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매일 밤 관심 있는 상대에게 보내는 문자의 결과가, 연출진의 예상을 빗나가 의아할 때도 있었다. 즉, 편집은 입주자들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시점을 역추적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하트시그널 시청자들이 덩달아 설레고, 한번쯤은 자신의 과거 연애가 떠오르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Q. 하트시그널의 연애는 현실과는 다른데?


한 달 동안 입주자에게는 서로의 연락처가 공개되지 않는다. 보고 싶어도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며 직접적인 사랑 고백 역시 제한된다. 현실 세계와는 달리, 경쟁자들이 바로 옆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상념을 불러오기도 할 것이다. 또, 현실에서는 연애를 하더라도 매일 연애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그널하우스에서는 연애 감정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다. 이 때문에 연애 감정으로 인한 행복감과 괴로움도 훨씬 깊게 느낀다. 그래서 물리적으로는 한 달이지만 체감은 훨씬 길다고 한다. 공간과 상황의 제한으로 시간이 더 밀도 있게 흐르는 것 같다.

 

Q. 하트시그널2의 결말이 화제인데?


하트시그널은 드라마가 아니다. 어떤 결말을 향해 가는 서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또, 마지막에 커플이 되는 것이 목적인 프로그램도 아니다. 입주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무한 썸’ 을 타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도, 여러 가지 조건과 자기방어가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한다. 하지만 시그널하우스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계속 관찰하고, 솔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입주자 모두 그것에 충실했고, 마음의 소리에 따라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 두 명의 출연자를 제외하고는, 그곳에 상대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도 선택을 했다. 더욱 안정적인 선택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하트시그널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리얼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 출처: 과학동아 2018년 7월호 '신호를 보내~시그널 보내~ '하트시그널'의 심리학'